지구촌 선교문학 선교회 대표 나은혜 목사

그리고 그다음에 찍은 가족사진은 결혼20주년을 선교지인 C국에서 맞으면서 찍은 것이다. 선교지에서 중.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한국 포항의 한동대로 진학해서 대학교 1학년 이던 아들이 방학을 맞아서 선교지에 들어 왔다. 그런데 아들은 내일이면 출국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후원 문제로 한국에 나갔던 남편은 아들이 한국으로 출국 하기 하루 전에 선교지로 들어왔다. 그렇게 하여 다섯식구가 단 하루를 함께 할 수 있었다. 우리는 단 하루 온가족이 함께 할 수 있었던 그 기회에 사진관에 가서 가족사진을 찍었다. 이 사진은 후에 명품사진이 되었다. 중국전통복장을 하고 찍은 이 사진은 보는 사람마다 마치 온가족이 홍콩배우들 같다고 하였다.
그리고 그후론 가족 사진을 찍을 기회가 없었다. 그러다가 동서네 집에 갔는데 온 식구가 청바지에 흰색 상의를 입고 찍은 가족사진이 벽에 걸려 있었다. 나도 저렇게 가족사진을 찍어보고 싶다는 소원이 생겼다.
그러다가 우리 식구가 다 모이는 기회를 잡아서 청바지와 흰색상의를 입은 가족 사진을 대구에서 찍었다. 이때는 시어머님과 큰사위와 손녀 로아까지 8식구가 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세월이 또 몇년 훌쩍 흘렀다. 어느덧 막내딸도 결혼 했고 큰아들도 결혼을 했다. 큰딸은 첫 딸 로아를 낳은 후에 아들 둘을 더 낳아서 나는 손주가 셋이 되었다. 그리고 우리부부가 모시고 살던 어머니는 94세를 일기로 소천을 하셨다. 어머니는 소천 하셨지만 4식구가 더 늘어난 셈이다. 나는 꽤 오래전부터 우리가족 모두 가 우리나라 전통복장인 한복을 입고 가족사진을 한 번 찍어 봤으면 하는 소원을 갖고 있었다. 그런데 가족이 많아질수록 한자리에 모이는 것은 점점 어려워진다. 그래서 가족사진 찍는 것이 참 쉽지않다. 그런데 2025년 10월 마침 내 생일날에 우리 가족이 다 모이기로 했다. 나는 사진관에 예약을 미리 해두었지만 가족 사진 찍기는 가족들이 다 협력을 해주어야만 한다. 그래서 미리 가족들의 허락을 받아 놓았다.
그 사진관은 부모님에게는 화장과 머리손질까지 해주고 온가족 한복까지 전부 대여해주는 꽤 큰 규모의 사진관이었다. 우리는 내 생일을 기념하는 날 오전에 시간을 할애해서 가족사진을 찍으러 갔다. 우리 가족은 처음엔 한복을 입은 사진을 찍었다. 그다음에는 흰바지와 푸른색 상의를 자연스럽게 입고 사진을 찍었다. 우리는 사진사의 요구에 부응하여 여러 포즈를 취하였다. 사진사는 매우 노련했다. 무엇보다도 어린 손주 셋이 잘 따라할 수 있게 해 주어서 가족사진촬영을 잘 마칠 수 있었다. 오전내내 사진을 찍느라고 가족들 모두가 수고를 했다. 점심때가 되었다. 내가 한정식이 먹고 싶다고 해서 한정식밥상으로 한 상 가득 아예 차려져서 나오는 점심을 먹었다. 막내딸이 점심값을 냈다.
막내딸은 전날에도 온가족을 찜질카페에 초대해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게 해 주었다. 나와 남편은 그 날 생전 처음으로 양머리도 해 보았다. 아주 오랫만에 가족 모두 찜질방에서 보내는것도 무척 즐거웠다. 작은딸과 아들내외가 엄마생신축하를 위한 행사준비를 한다고 먼저 집으로 가고 딸과 사위 그리고 세 손주와 함께 볼링을 치러 갔다. 나는 20년 전에 볼링을 쳐보고 그동안 볼링을 칠 기회가 별로 없었다. 그래선지 볼링 스탭조차 그만 다 잊어 버려서 볼링이 잘 쳐지지를 않았다. 나에게 볼링을 칠 차례가 왔지만 영 형편이 없었다. 결국 사위가 따로 나에게 볼링 레슨을 해 주었다. 사위는 하나하나 볼링 스텝을 가르쳐 주고 손동작도 알려 주었다. 그래도 20여년 전에 쳐봤던 경험이 있어서인지 어느 정도는 볼링동작이 되살아 났다.
차근 차근히 볼링스텝과 포즈를 나에게 가르쳐준 사위 덕분에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볼링공을 한번 굴려서 전부 핀을 쓰러트리는 스트라이크를 내가 두번이나 친 것이다. 와~ 가족들이 모두 함성을 질렀다. 가족들은 환호성을 지르며 나와 손을 마주치며 축하해 주었다. 나는 마음 속으로 “ 그래도 내 생일날인데 이정도 신나는 일은 있어야지” 하는 생각을 하면서 싱글벙글 웃으며 마음이 흐믓해졌다. 볼링을 다 치고 우리 집에 돌아오니 아파트 현관 입구부터 풍선장식을 해 놓았다. 집안 분위기가 완전히 바뀐 것이다. 집안 곳곳에 예쁜 장식을 하고 엄마 생신을 축하 한다는 현수막도 붙여 놓아서 우리 집은 순식간에 그야말로 근사한 행사장으로 변해 있었다.
아들내외가 내생일파티 준비를 아주 잘 준비해 놓고 있었다. 아들이 마이크까지 준비해서 사회를 보면서 순서를 이끌었다. 오프닝 퀴즈 맞추기, 남편의 나에게 보내는 사랑의 편지 낭독, 그리고 삼남매의 감동스러운 특송이 있었다. 엄마의 생일축하 노래를 하는 삼남매나 듣는 사람들이나 모두 눈물을 글썽였다. 선교사로 살아온 엄마의 삶을 생각하며 또 우리 가족이 선교지에서와 지금까지 함께 겪어온 모든 시간들을 떠올리며 흘리는 눈물이었을 것이다. 남편과 나는 일어나서 특송을 마친 삼남매를 껴안아 주었다. 우리가 서로 부둥켜 안자 막내손자 조이가 쪼르르 달려와 자기도 작은 팔을 벌리고 우리와 합세했다. 그 모습이 너무 귀여워서 우리는 모두 웃음을 터뜨렸다.
그리고 며느리가 준비해온 멋진 생일 케이크를 로아 로이 조이 세 손주들과 함께 촛불을 끄고 케이크를 잘랐다. 며느리와 아들이 내생일 파티를 멋지고 의미있게 잘 준비한 모습이 느껴져서 감동이 되었다. 언제 저렇게 준비를 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림을 잘 그리는 아들이 남편과 나의 고등학교시절 사진과 청년때 사진을 내 추억 앨범에서 언제 입수했는지 작품을 만들었다. 전등이 들어가 있는 액자의 그림은 누구인지 모르지만 전등불을켜면 남편과 나의 젊은시절과 고교때 모습이 나타났다. 와~ 가족들 모두 함성을 질렀다. 요술액자는 우리를 정말 깜짝 즐겁게 해 주었다. 큰딸과 사위는 나의 오래된 핸드폰을 생일선물로 새핸드폰으로 바꾸어 주었다. 구입한 지 5년이 넘은 내아이폰은 전화받기가 안되는 고장이 난 상태였다. 하지만 아이폰이 워낙 가격이 고가여서 쉽게 사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데 내생일을 맞아서 뜻밖에도 내게 꼭 필요한 아이폰 16을 선물해 준 것이다. 그리고 딸과 사위는 남편의 핸드폰도 갤럭시26 새핸드폰으로 바꾸어 주었다. 남편 핸드폰도 6년차라 바꿀때가 넘은 상태였다. 내생일 보다 보름이 늦은 남편의 생일 선물이었다. 하루전부터 시작된 내생일 축하행사인 가족모두 찜질카페에 가기를 비롯해 한복입고 가족사진 찍기, 한정식먹고 볼링치기, 생일축하행사하기 그리고 저녁은 피자와치킨을 시켜서 먹었다. 내가 저녁을 준비하려고 했더니 나의 수고를 덜어 주려고 자녀들이 배려한 것이다. 아무튼 특별한 의미가 있는 이번 내생일은 참 기분 좋은 시간들이었다. 특별히 의미 있는 이번 생일날을 은혜롭게 보내게 해달라고 오래전부터 기도해온 기도의 응답이었다.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로 남편과 내가 주안에서(같은교회& CCC)만나서 결혼하고 이룬 가정이 결혼45주년을 맞았다. 그리고 둘이 만나서 11식구로 늘어난 감격을 맛보았다. 무엇보다 기분이 좋았던 것은 이번 내생일을 맞아서 한복을 입고 가족사진을 찍은 일이다. 이것은 내가 오랫동안 소원해 왔던 일이다. 온 가족이 한복을 예쁘게 입고 사진을 찍어서 오랫동안 꿈꾸어 왔던 내소원이 드디어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정말 난망(難忘)의 생일날이다.
[시146:5] 야곱의 하나님을 자기의 도움으로 삼으며 여호와 자기 하나님에게 자기의 소망을 두는 자는 복이 있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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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혜라 기자 다른기사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