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선교지의 회상

지구촌 선교문학 선교회 대표 나은혜 목사

▲ 나은혜목사와 중국인 여학생

금요일 저녁에 김포에 있는 우리 선교회 사무실에 한 중국인 여학생이 찾아왔다. 남편 K선교사가 다문화 학생을 가르치는 신학교 교수로 부터 걸려온 전화를 한참 동안 하더니 그로부터 소개받은 여학생이다.

그 학생은 고려대에서 한국어과정 석사과정 코스웍을 마치고 논문을 남겨두고 있다고 했다. 논문을 써서 통과를 해야 졸업을 할 수 있으니 K선교사에게 논문작성의 도움을 받으러 온 것이다.

남편은 신학을 하고 선교사가 되기 전에 고등학교에서 상당히 오래동안 국어를 가르쳤다. 남편은 자신의 달란트인 국어교육을 바탕으로 선교지에서는 현지 대학생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쳤다.

그후 한국에 나와서는 ‘지구촌한국어교육선교회’를 설립하여 외국 학생들의 논문쓰기를 지도해 주었다. 그동안 남편의 지도로 석. 박사 학위를 받은 외국학생이 무려 17명이다. 학생들이 학위를 받고 보내온 학위논문이 17권이니까 말이다.

서글서글한 눈매의 여학생은 사무실로 들어서자 곧바로 가방을 내려놓고 노트북을 꺼낸다. 논문지도를 받을 준비를 하는 것이다. 이미 저녁때가 지나 있었지만 나는 물었다“저녁 식사는 했어요?”

여학생은 “아니요...” 한다. 나는 젊은 사람이 얼마나 배가 고플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렇다고 준비된 음식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래서 나는 “내가 얼른 라면 끓여 줄테니 먹고서 해요.” 학생은“아니예요. 괜찮아요.” 한다.

괜찮긴... 저녁 안 먹었으면 배고픈건 인지상정이지. 나는 곧 전기렌지에 물을 넣은 냄비를 올려서 물을 끓이고 신라면 한개를 끓였다. 삶은 달걀도 하나 까서 라면에 넣어 주었다. 나는 학생에게 어서 저녁을 먹으라고 했다. 순간 학생의 눈빛이 환하게 밝아진다.

라면 한그릇에 김치와 오이김치 그리고 찬밥도 반공기쯤 있기에 따뜻하게 데워서 주었다. 편하게 먹도록 카페에 음식을 차려 두고 나는 로비로 나왔다. 그렇게 간단한 저녁을 먹고 학생은 곧바로 남편에게 논문 지도를 받기 시작했다.

나는 흐믓한 미소를 지으며 방으로 쉬러 들어갔다. 논문지도를 마친 학생과 나는 대화를 나누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학생은 우리가 첫선교지로 가서 정착했던 도시에 있는 대학을 다녔다고 했다.

그리고 그 대학은 K선교사가 한국어 교수로 있으면서 비자를 제공 받았던 대학이 아닌가? 아...이럴 수가... 연도를 알아보기 위해 출생연도를 물어 보았다. 학생은 99년생이었다. 우리가 그 도시를 떠난지 거의 20년 후에 학생은 그 대학을 다닌것이다.

하지만 우리 부부는 아주 특별한 감정이 들었다. 무척 반가웠다. 당연하지 않겠는가. 우리의 첫 선교지에서 첫사역하던 대학교를 다닌 학생이 이제 한국으로 유학을 와서 논문을 지도 받으러 우리에게 오다니 말이다.

지금도 소식을 주고 받고 있는 그당시 우리가 전도하고 제자훈련을 했던 제자들은 이미 40대 후반의 나이로 사회전반에서 활동하고 있다. 어느새 세월이 이렇게 흘렀는지... 우리가 선교지에서 사역하던 때쯤 태어난 사람이 자라서 대학원생이 되어 찾아왔으니 인생이란 참 신비스럽다.

선교지에서 남편 K선교사가 한국어 교수가 되어 한국어를 가르치면서 알게된 학생들이 우리집에 찾아오면 나는 여러가지 한국음식, 닭도리탕, 잡채, 떡뽂이, 김밥등을 만들어 먹였다. 그렇게 식탁교제를 하며 친해진 그 학생들은 대부분 복음을 받아 들이곤 했다.

그것이 바로 우리의 첫선교지에서 했던 사역이었다. 복음을 듣고 예수를 믿기로 결단한 학생들을 제자훈련을 하며 말씀을 가르치던 때의 일이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밤 열시가 되어서 논문지도를 받고 돌아가는 학생을 버스정류장까지 배웅하고 돌아온 남편과 나는 대화를 시작했다. 조만간 시간을 내서 고향을 방문 하듯이 우리의 첫선교지였던 그곳을 가보자고 말이다.

[딤후4:2]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범사에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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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혜라 기자 다른기사보기